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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금지법과 이주민

차별금지법과 이주민

 

아시아인권문화연대 이완 활동가

 2020년 여름, 두 달 가까이 이어진 폭우 속에 물난리가 나고, 제방이 무너진 어느 마을의 이재민의 상황을 보도하는 방송 카메라에 비친 이재민의 상당수는 이주노동자였다. ‘비닐하우스는 집이 아니다.’를 외친지도, 몇 년이 넘었고, 고용노동부는 지침을 바꾸었다는데, 현장의 많은 이주노동자는 여전히 매달 몇십만 원의 기숙사비를 내면서 집 같지도 않은 논밭의 임시 시설에서 머물고 있었다. 이주노동자에 대한 차별이 숙소에서만 국한된 것은 당연히 아니다. 한 나라의 인권 수준을 극명하게 보여줄 수 있을 때는 바로, 위기 상황일 것이다. 위기 상황에서 자원과 지원을 어떻게 배분하는지를 보면, 그 사회에서 특정한 사람들을 어떻게 대웅하는지 알 수 있다. 

 코로나 19라는 재난 상황에서, 정부는 이미 이주민과 난민에 대한 차별을 정당화, 공식화했다. 공적마스크 공급에서 그리고 재난기금에서의 배제는 당연시 여겨졌다. 위기상황에서만 특별할까? 끝도 없이 나오는 유력 정치인과 정부 관계자들의 이주노동자 차등 임금 주장에, 건강보험 차별까지 당하고, 한국 사회 곳곳에 이주민을 향한 평등은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도 더 위험한 현장으로 계속해서 이주노동자를 몰아넣는다. 2018년 9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12년부터 2017년 5월까지 산업재해를 당한 이주노동자는 3만3798명이었고 사망자도 511명이나 되었다. 산재보험에 가입한 내국인 노동자의 산재 발생률은 0.18%인데 반해, 이주노동자 산재 발생률은 1.16%로 내국인 노동자에 비해 6.4배가 높았다. 

  일상에서의 인종차별은 일일이 열거하기도 어렵다. 외국인이라는 이유로 편의점에서 물건을 사는 것도 거부당하고 내쫓기고, 지하철과 길거리 그리고 일터를 가리지 않고 외국인이라는 이유로 폭행을 당한다. 히잡을 쓰고 가다 길거리에서 강제로 이를 벗기는 사람을 만나기도 하고, 버스에서는 아랍에서 온 사람과 비슷하다는 이유로 욕설을 들어야 한다. 구청에 가는 결혼이주여성은 이주민 관련 부서 명칭이 ‘저출산대책이나 출산다문화팀’이라고 적힌 것을 보아야 한다. 하지만, 한국은 공식적으로 인종차별사건이 단 한 건도 없는 나라다. 왜냐하면, 한국에는 인종차별이 무엇인지 정의한 법도, 이를 처벌할 어떤 수단도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관련 통계조차 존재하지 않는다. 

 2019년 3월 17일, 서울 종로에서 UN에서 기념일로 정한 ‘세계 인종차별 철폐의 날’ 행사가 열렸다. 맞은편에는 약 30여 명이 반(反)난민, 반(反)외국인 시위 집회를 열었다. 이 집회에서 발언자들은 자신들은 인종차별주의자가 아니며, 정부와 가짜 인권단체들이 자신들을 인종차별주의자로 몰아가고 있다고 말했다. 이들은 이주민들이 한국인들이 세금을 들여 어렵게 형성해 놓은 현재의 사회복지 시스템에 무임승차해 아무런 기여 없이 혜택만을 받아간다거나, 정부의 다문화 정책이 사실은 국민을 역차별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한국에는 자신을 ‘인종주의자’ 또는, ‘인종차별주의자’라고 말하는 사람을 찾을 수는 없다. 전통적인 방식, 즉 사람을 피부색이나 특정 인종으로 구분하고 이에 따라 차별하는 생물학적 인종주의는 일부 퇴색하고, 사람을 문화 차이 등으로 구분하고 인종화하여 차별하는 새로운 형태의 신인종주의가 나타나고 있다. 신인종주의에서 개개인은 자신의 고유한 문화가 있으며, 고유한 문화를 지킬 권리를 가지고 있다고 말한다. 따라서 본래 위치(국가)에서 자신의 문화를 지키며 살아야 하며, 이것이 함께 사는 것보다 훨씬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말한다. 즉, 문화와 민족성에 기대어 구분과 차별을 정당화하는 새로운 인종주의다. 

이와 관련한 국가인권위원회의 연구결과는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 2019년, 「한국사회인종차별실태와 인종범죄 법제화 연구」에 따르면, 이주민들은 고전적인 생물학적 인종주의에 기인한 차별보다, 출신 국가나 한국인이 아니기 때문에, 한국어 능력, 악센트, 그리고 의식주 문화 등에 의해 차별을 받는다고 말했다. 그리고 성별, 직업 경제적 수준에 의해 차별받는다고 응답해, 고전적인 인종차별 형태보다는 한국 사회 기저에 깔린 경제력, 성별 등에 의한 차별이 교차적이고 복합적으로 벌어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현실에서 벌어지는 교차적인 차별양상에 고전적인 생물학적 인종주의만을 기준으로 한 인종차별 제한은 그 효과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따라서 인종차별을 억제하기 위해서는 모든 차별을 종합적인 시각에서 다룰 수 있는 차별금지법이 필요하다. 

 법이 생긴다고 일상에서의 모든 차별과 윤리적인 배제 현상을 남김없이 없애버릴 수는 없다. 일상 속 모든 일에 법에 잣대를 들이대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으며, 불가능하다. 법이 제정된다고 해서, 결혼이주여성에게만 강요되는 일상에서의 이중 잣대가 없어지지도 않으며, 학창시절 내내 생일잔치에 초대받지 못했던 이주 배경 아동에게 친구를 만들어 줄 수도 없다. 하지만, 차별금지법의 유무는 매우 큰 차이가 있다. 최소한, 인종차별적 발언이 짓궂은 농담이 아니라, 누군가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가 된다는 것을 사회구성원 모두가 알 수 있게 될 것이다. 교육, 노동, 서비스의 이용에서 누군가를 다르다는 이유로 차별하면 안 된다는 명문화된 사회적인 기준이 있어야 한다.

 또한, 우리는 차별금지법을 통해, 한국 사회 곳곳에 드리워져 있는 제도적인 차별들을 돌아보고 교정할 기회를 얻게 될 것이다. 틈만 나면 말하는 ‘관례로 해왔던’, ‘어쩔 수 없는 이유’로 인한 ‘피치 못할 차등 대우’가 정말 정당하고 정의로운 일인지 다시 판단하고 정의롭게 수정할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한다. 정부와 제도권에 의한 차별은 그 자체로도 나쁘지만, 사회구성원들에게 차별을 공인되고 정당한 차등 대우로 인식하게 하여 다양한 층위의 차별을 확산 및 고착화한다는 점에서 크 패악을 가늠하기 어렵다. 차별금지법은 인종차별철폐의 종착점이 아니다. 평등을 향한 최소한의, 가장 기본적인 안전장치다.